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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5. 서울중앙지방법원 ‘무고’ 사건-
이성과 감성. 법적용자의 입장이 된다면 어떤 걸 선택해야할까. 재판을 보는 내내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검사의 질문은 날카로웠고 굉장히 논리 정연했다. 제시하는 진술서와 진술조서를 통해 증인과 피고인 변론의 모순점을 하나하나 들춰내는 모습은 보는 나조차 긴장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보는 나조차 이럴진대 70세가 넘은 증인들과 피고인은 얼마나 더 긴장되고 착잡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쓰러웠다. 하지만 검사의 이성적 태도는 법학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더욱이 당사자 대등주의를 추구하는 형사법정에서 반드시 지켜 내야할 의무와도 같은 것이라 생각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날카롭고 차가운 이성적 법 태도를 비판하지만 이성이야말로 다수의 우둔한 여론으로부터 정의를 지켜낼 메시아와 같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이성 앞에서 증인들과 피고인은 하나씩 무너져가는 모습이었다. 진술이 뒤바뀌고 그럴수록 증인들과 피고인의 말은 점점 모호해지며 때론 ‘기억이 안난다’라고 넘겨버리기 일쑤였다. 지켜보기만 하던 재판장님마저도 피고인의 말을 끊어가며 상황을 정리하기 바빴고, 때론 타이르듯이, 때론 근엄하게 일침 하듯이 재판을 주재해나갔다. 
그러나 이런 이성적 판단의 우월성을 견지한 내 태도는 변호인의 차례가 되었을 때, 특히 변호인의 최종변론 때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 유창한 언변도 아니었고 그동안 매체를 통해 봐온 변호사들과는 달리 다소 어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어눌함 속에서 감정적 호소가 마음을 파고들었고 피고인에 대한 측은함과 안타까움이 마음 한 켠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재판을 보는 내내 내 스스로가 검사측이 되어보기도, 원고측이 되어보기도 하면서 각각의 입장에서 가상의 싸움을 해보았고, 마지막으로 판사와 배심원의 입장이 되어 법적 판단을 내려 보기도 했다. 이성과 감성의 싸움에서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배심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바로 그때 재판장님의 배심원 제도 설명과 함께 판단에 대한 조언을 해주셨다. 유무죄의 판단은 공소장도, 최종변론도 아닌 재판에서 객관적으로 제시된 증거들을 통해서만 해야 된다는 것, 합리적 의심이 하나라도 들 경우엔 무죄로, 그런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고할 땐 유죄로 해야 한다는 것.
형사소송법을 배우며 많이 들어왔던 것인데도 이 날은 새롭게 다가왔다. 단지 이론을 배우는게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이 좌우되는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나에겐 이론일지 모를 익숙한 것들이 누군가에겐 인생을 바꾸는 것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흔히 법은 최소한이라 말한다. 그래서 삶에서 법을 들이대면 융통성도 없는 꽉 막힌 사람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물론 법은 최소한이고 법외에 다른 원만한 해결책이 있다면 서로에게 선이 되는 한에서 해결을 보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직접 재판을 참관하며 마지막까지 남는 깨달음은 법 이론과 판단기준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빠져선 안될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합리적 의심을 통한 ‘무죄’선고도 아닌 비합리적, 근거 없는 의심을 통해 ‘유죄’를 들이대고 있진 않았을까? 이성은 중요하다. 명백한 유죄를 감성에 흔들려 무죄로 만드는 건 자비일지 몰라도 정의는 아니다. 그러나 감성을 절대 무시할 순 없다. 감성의 진짜 활약은 양형에서 빛을 발한다. 감성을 고려한 양형을 통해 불평등하고 기울어진 법 정의를 고르게 다지는 것, 재판장님은 마지막까지 이걸 이해시키고자 그렇게 긴 시간을 할애하여 배심원들과 청중들에게 설명하셨는지도 모르겠다.



2013.11.19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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