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이야기, 하나의 이름 '사랑'. 첫 번째 이야기는 누군가의 소설 속에 자신들의 사랑이 너무나 똑같이 적힌 두 사람의 사연이 등장한다. 너무나 똑같기에 결말을 두고 고민하는 두 사람, 끝내 그들은 결말을 덮어둔 채 책을 강으로 던져버리지만 이미 여자는 결말을 보고말았다. 그 결말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마지막에 그들의 사랑이 'END'로 적혀있을 뿐. 그러나 여자는 'AND'로 고쳐적으며 그들의 사랑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기로 한다. 두 번째 이야기 속엔 그들의 옛사랑을 후회하는 늙은 두 사람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을 버는데 몰두하는 남자, 사랑을 갈망하지만 남자가 일에만 몰두해 언제나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여자. 끝내 그들은 이별한 채 오랜시간을 보내고 ..
더불어숲동산교회 청소년부, 그리고 세월호 엄마들과 함께한 연극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참 많이도 웃고 울었던 시간이었다. 두 번째 보는 연극인데도 또 다른 감동과 아련함이 느껴진다. 덕분에 다시 한 번 416과 이웃에 대해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이웃에 대한 감동은 연극으로만 끝나지 않고 함께 한 저녁 식사자리까지 이어졌다. 함께 나누는 밥상 가운데 오고가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마주봄이 연말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진짜 행복은 이런 소소함 가운데 있는 게 아닐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이웃이 되길 소망하고 다짐하며! P.S. 더불어숲동산교회는 이웃에 대한 따스함이 가득 묻어있는 곳이다.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 서슴지 않고 인사하고 말을 건네기란 쉽지 않은데도 이곳 사람들에..
어릴 때 오페라를 본 적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페라의 성악만 따와서 애니메이션에 더빙한 작품을 봤었다. ‘마술피리’라는 작품이었는데 솔직히 그 당시엔 굉장히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무엇보다 클래식 음악과 성악으로만 대사가 이루어지는 게 그 당시 어릴 때 봐오던 여느 만화와 달랐고, 노래와 음악 또한 흔히 듣던 대중가요와 달라 낯선 느낌이 지루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우연히 뮤지컬을 접했을 때 오페라와는 다른 대중적 재미와 노래에 매료되었고 그것에 익숙해질수록 오페라는 너무 심오한, 따분한, 무거운 것이라는 이미지만 고착되어 갔다. 이전까지의 오페라에 대한 나의 부정적 생각 때문에 사실 이번 공연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지루 한 시간을 억지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불편하..
처음 공연장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무대 장치들이었다. 연극 [성호 가든]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없이 들어갔기에 전체적인 스토리도, 분위기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무대 장치를 통해서 연극의 분위기를 유추해볼 뿐이었다. 무대 장치의 전체적인 모습은 단란한 전원의 느낌과 동시에 닭들에 매달린 꼬챙이는 괴기하기도 하고 흉측하기도 했다. 굉장한 이질감을 드러냈다. 분명 소박하고 조용할 것 같은 이 성호 가든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질감이 느껴지는 꼬챙이들은 이 연극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저번 공연 ‘불쌍’ 때와는 달리 정말 편한 마음으로 보고자 했다. 자칫 나무에 집중한 나머지 숲을 놓치지 않기 위해. 특히 인물 별로 맡겨진 역할이나 성격들을 토대로 연극을 바라..
발레 공연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 본 발레는 국민대에서 제작한 ‘국민발레 춘향’이었는데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대 장치와 무용수들의 의상에 매료되어 넋을 놓고 봤었다. 발레에 대한 기존까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뜨리게 된 계기가 된 공연이었는데, 그동안의 발레와 달리 화려한 한복을 연상시키는 의상, 클래식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사물놀이 공연은 정말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발레가 결코 지루하거나 재미없지 않다는 느낌을 새긴 시간이었다. 이번 ‘멀티플리시티’는 ‘국민발레 춘향’과는 사뭇 달랐지만 기존 발레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다른 방향으로 전달해주었다. 흔히 발레하면 연상되는 백조 모양의 의상이 아닌 쫄티와 비슷한 느낌의 의상,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비중도 없고 드러나지도 않는 무대..
현대 무용을 어떻게 봐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전 수업에서 현대 무용에 대해 수업을 들었지만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는 것 같았다. 정치적 메시지, 다양한 융합, 새로운 실험과 시도 등이 현대 무용의 특징이면서도 한편으론 각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기에 정답은 없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답이 없다곤 하지만 연출자는 분명 동작 하나하나에, 소품과 조명, 음악 각각에 자신의 사상과 가치관, 메시지를 투영시켰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이런 혼란과 어려움을 안고 공연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을 즐기자고 스스로 되뇌면서도 과제라는 압박이 공연 보는 내내 나를 분석적이게 만들었다. 사실 그런 시각으로 계속 보고 있자니 지엽적인 부분 하나하나에 집..
공연장의 모습부터가 굉장히 새롭고 실험적이었다. 엄숙하고 조명이 꺼진, 객석과 무대와의 거리는 멀찍이 떨어진 고요한 공연장을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앞뒤가 뻥 뚫린 공간에 좌석 또한 방석이 마구잡이로 놓여있는, 예상치도 못한 곳이었다. 처음엔 내가 콘서트에 온 게 맞나 싶었다. 뒤늦게 피아노와 가야금, 드럼 등의 악기를 보고 그제야 공연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굉장히 조촐한 느낌이었지만 그런 조촐함이 오히려 하우스 파티나 가든파티를 연상하게 해서 훨씬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무대과 객석의 구분을 깬 공연장은 연주자와 관객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음악을 타고 함께 호흡하는 느낌을 받게 했다. 연주와 청취가 아닌 함께 숨을 쉬는 시간이라 여겨졌다. 음악의 장르 또한 마찬..
다원예술이라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개념조차도 생소한 공연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우면서도 설렘이 동시에 느껴지는 일이었다. 일반인들만으로 구성된 공연이라는 신선함은 이 공연을 가장 기대하고 기다리게끔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팜플렛을 보아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공연이기에 더 기대감과 궁금증을 가지고 공연을 볼 수 있었다. 4월에 대한민국에 큰 슬픔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사는 안산은 그 큰 슬픔의 중심지이자 응집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 공연을 보기에 앞서 이 슬픔의 시기에 내가 공연을 본다는 자체가 일종의 죄책감마저 느끼게 하였다. 그러나 이 공연을 마치고 나왔을 땐 그 안에서 마음을 치유 받은 느낌이었다. 안산의 슬픔과 함께 웃음을 잃어버렸던 내가 내내 웃고 박수치고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