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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예술이라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개념조차도 생소한 공연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우면서도 설렘이 동시에 느껴지는 일이었다. 일반인들만으로 구성된 공연이라는 신선함은 이 공연을 가장 기대하고 기다리게끔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팜플렛을 보아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공연이기에 더 기대감과 궁금증을 가지고 공연을 볼 수 있었다. 
4월에 대한민국에 큰 슬픔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사는 안산은 그 큰 슬픔의 중심지이자 응집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 공연을 보기에 앞서 이 슬픔의 시기에 내가 공연을 본다는 자체가 일종의 죄책감마저 느끼게 하였다. 그러나 이 공연을 마치고 나왔을 땐 그 안에서 마음을 치유 받은 느낌이었다. 안산의 슬픔과 함께 웃음을 잃어버렸던 내가 내내 웃고 박수치고 소리 지르며 그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2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공연은 훌쩍 지나갔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사람을 만났고, 정치를 보았고, 대한민국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사람들이 하나씩 나오며 자신들을 소개하며 소중한 보물들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렇게 많고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것도 신선했고, 각자만의 성향과 추억들을 나누며 그 삶에 잔뜩 깊이 들어가 공감하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100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소개가 되면서 그들 각자의 삶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때론 코끝이 찡해지기도, 그들의 삶에 용기를 북돋는 박수를 치기도 했다. 그 순간 이 공연이 다른 공연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이, 공감하며 박수치고 소리 지르는 것에 대해 굉장히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공연은 조용해야 했다. 그래야 남들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공연은 오히려 함께 박수치고 함께 웃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공연의 전체적인 느낌이 그랬고 그걸 가장 강하게 드러냈다. 박수와 함성의 자유를 얻은 관객뿐만 아니라 무대에 선 광주 시민들도 발언의 자유를 얻었다. 어느 누구나 이처럼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낼 자유를 가졌고, 어느 누구나 자신만의 선택을 내릴 자유를 가졌다.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소수의 의견이라고 책망 받을 것도 아니었다. 성별, 나이, 계층 따위는 정답을 내리는 기준이 아니었다. 모두는 존중받기에 마땅하며 우리는 그런 다양함 속에 공감할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100명의 광주 시민, 그리고 수백 명의 서울 관객들의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 다양한 삶 속에서 아픔과 슬픔, 기쁨과 행복, 성공 또는 좌절이 공존하지만 그 모든 걸 미소와 춤, 환호로 이겨내는 모습에 절로 존경심이 나왔다. 최근 정치인들과 정부 관료들의 탁상공론이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전혀 국민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정치인들은 자료나 탁상 위에서가 아닌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삶 속에서 정치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공연 안에서 대한민국과 정치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100% 광주’를 보며 한편으론 부러움과 질투심이 났다. 내가 사는 안산에 ‘100% 안산’ 공연이 펼쳐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사건으로 안산은 온통 슬픔에 젖어있다. 길거리의 시민들조차 슬픔을 한가득 안고 살아가고 있다. 문화와 예술은 사건을 직접 해결해주진 못한다. 그러나 충분히 위로하고 덮어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 만약 ‘100%안산’이 만들어진다면 안산은 큰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100%광주’라는 건 100명의 광주 시민을 뜻하기도 했지만 광주의 100%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100%안산’을 통해 안산의 100% 모든 것을 보여준다면 분명 그 안에서 우리는 함께 울고 웃고 위로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Written by 장_키호테. 2014.]


2014.06.2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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