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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무용을 어떻게 봐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전 수업에서 현대 무용에 대해 수업을 들었지만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는 것 같았다. 정치적 메시지, 다양한 융합, 새로운 실험과 시도 등이 현대 무용의 특징이면서도 한편으론 각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기에 정답은 없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답이 없다곤 하지만 연출자는 분명 동작 하나하나에, 소품과 조명, 음악 각각에 자신의 사상과 가치관, 메시지를 투영시켰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이런 혼란과 어려움을 안고 공연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을 즐기자고 스스로 되뇌면서도 과제라는 압박이 공연 보는 내내 나를 분석적이게 만들었다. 사실 그런 시각으로 계속 보고 있자니 지엽적인 부분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배우들의 작은 동작에도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결국 포기해버렸다. 분석적인 태도와 과제의 압박은 모두 내려놓고 그냥 받아들이며 가슴이 반응하는 대로 느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제야 공연의 전체적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음악과 동작, 소품 등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며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기에 앞서 모든 조명들이 꺼지고 암흑 속에서 고요함과 함께 분위기가 잠겼다. 그리고 막이 올랐을 때 이전까지의 암흑과는 철저히 대비되는 화려한 불상들이 등장하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조금씩 움직임과 행동을 증가시키며 불상 안에 자신들의 삶을 투영시키는 것 같았다. 행동의 범위 또한 불상을 떠나지 못하고 불상 중심 안에서 행동과 행위가 이루어지며 불상에 종속된 모습이었다. 그 뒤 사람들의 행동이 불상의 범위를 벗어나며 부자연스러운 동작의 인형과 같은 춤을 추는데, 불상에 종속되어 있을 때에는 인간의 자아가 불상에 투영되는 것 같더니 불상을 벗어나 마치 인형처럼 춤을 추는 모습에선 불상 안의 자아가 인간에 투영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종교와 인간 간의 경계는 사라지고 두 자아가 융합되는 느낌이었다. 혹은 인간에게서 불상으로, 그리고 다시 불상에게서 인간으로 자아의 이동이 돌고 도는 것 같았다.
그 다음 장면에서는 네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고 한 쪽에선 또 다른 한 명이 무술과 같은 격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그러다 점점 실랑이와 갈등이 고조되고 다른 쪽에 있던 한 사람마저 그 가운데 섞이는데, 승자인 것 같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 의해 굴복되고 다시 다른 사람에 의해 이전까지의 승자가 굴복되며 승자와 패자 간의 경계가 무너졌다. 결국 갑자기 나타난 제3의 여인이 승리한 것을 의미하며 장면이 끝났다. 이 장면에서 또한 승자와 패자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승자와 패자의 위치가 돌고 도는 모습이 보였다.
전 장면에서 승리했던 여인이 바구니를 매개체로 성취의 정점의 모습을 보인다. 굉장한 자존감의 상승을 보여주는데 다른 한편에선 또 다른 면의 자아인 것으로 보이는 빨간 옷의 여인이 격한 움직임을 보이며 불편한 모습을 내비친다. 마치 성공이라는 동일인의 동일한 사건에 대해 내면의 상반된 두 자아를 보는 것과 같았다. 자존감의 정점을 보이던 자아는 욕망의 바구니 탑이 무너짐과 동시에 고꾸라지고 빨간 옷의 자아는 욕망의 공격 앞에 마지막까지 집착하다가 이내 같이 고꾸라진다. 결국 승리로 인한 자존감이 상승된 자아와 그 이면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자아는 붕괴라는 동일 사건으로 경계가 허물어지고 융합되어진다.
욕망의 바구니 탑이 무너지고 바구니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는데, 이는 다시 질서정연한 탑과 성을 이뤄 마치 불교에서의 연꽃을 형상화하는 듯했다. 연꽃이 의미하는 불교라는 종교에의 편안함이 느껴지고 의지되는 것 같지만 이마저도 결국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이 다른 존재를 살인함으로써 모든 것들을 다시 무너뜨린다. 혼돈에서 질서로, 야만적 모습에서 숭고함으로 이동하다가 또 다시 무질서와 혼돈으로…….
욕망 또는 연꽃을 의미했던 모든 바구니들이 치워지고 모두 사라진 뒤 홀연히 하늘에서 불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후 인물들의 움직임들은 모든 것에서 해방된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그러다 다시 혼돈의 불빛 움직임(미러볼)에 의해 자유로웠던 움직임은 격해지고, 그 격함의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자 암흑 속에 모든 것들이 흡수, 융합되어 다시 어둠 속에서 처음의 무로 돌아갔다. 그렇게 어둠 속으로 다시 ‘회귀’하며 공연은 끝났다.
각각의 장면으로 나눠지고 그 때마다 소품과 인물들의 등장, 행위들이 변화되었지만 전체적으로 끊임없는 경계의 무너짐과 융합, 통일, 반복의 모습들이 나타났다. 다양한 음악 장르를 아우르는 ‘라운지 음악’, 하나의 춤의 장르만이 아닌 아시아 여러 나라의 춤의 등장, 현대·서양 예술에서 고전·동양의 불상의 등장이 이러한 모습을 더욱 잘 드러내었다. 이는 마치 불교의 ‘윤회설’을 보는 것과 같았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어지고 다시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 것은 암흑 속에서 화려한 불상의 등장으로 시작되어진 공연이 마지막엔 혼돈 속에서 다시 암흑으로 돌아가는 것을 통해 나타났다. 또한 자아들의 반복된 이동과 상반된 자아들 간의 융합, 하나의 분위기에서 상반된 분위기로의 변화는 인간 운명의 돌고 도는 윤회설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절대적인 승리나 절대적인 평화로움, 자유, 절대적인 자아의 정착이란 없었다. 흘러가고 변화되고 융합되고 무너지며 이전의 것들이 절대적인 것들이 아님을 타나내었다. 그리고 그런 절대적이지 않은 윤회의 운명 속에서 살아가는, 상대적인 운명 변화의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들이 ‘불쌍’하게 보였다. 
현대 무용의 특징 중 하나는 고정된 틀과 경계를 깨뜨리는 것에 있다. 이전의 틀과 획일화된 경계는 결코 절대적인 것일 수 없다. 다른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어지고 융합되어지며 때론 무너지기도 하고 다시 재등장하며 돌고 돈다. 윤회의 모습이 현대 무용의 특징 속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공연 ‘불쌍’은 거기에 더 나아가 그런 현대 무용의 윤회적인 특징의 모습을 인간의 윤회적 운명과 일치시켜 표현했다. 그렇다면 현대 무용이라는 예술과 인간의 삶의 모습은 결코 구분되어질 수 없는, 윤회를 나타내는 모습에서 하나의 것이 아닐까?
[Written by 장_키호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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