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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오페라를 본 적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페라의 성악만 따와서 애니메이션에 더빙한 작품을 봤었다. ‘마술피리’라는 작품이었는데 솔직히 그 당시엔 굉장히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무엇보다 클래식 음악과 성악으로만 대사가 이루어지는 게 그 당시 어릴 때 봐오던 여느 만화와 달랐고, 노래와 음악 또한 흔히 듣던 대중가요와 달라 낯선 느낌이 지루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우연히 뮤지컬을 접했을 때 오페라와는 다른 대중적 재미와 노래에 매료되었고 그것에 익숙해질수록 오페라는 너무 심오한, 따분한, 무거운 것이라는 이미지만 고착되어 갔다. 
이전까지의 오페라에 대한 나의 부정적 생각 때문에 사실 이번 공연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지루 한 시간을 억지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나비부인’을 보고 난 뒤 이전까지의 기대하지 않았던 마음, 지루할 거라는 우려, 정적이고 무거운 예술이라는 기존의 생각들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공연이 다 끝났을 때 아낌없는 박수와 함께 내 모든 감동과 욕구를 분출시키게 되었다. 
138분의 시간동안 내 생각이 뒤바뀐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정적이고 고전적일 거라는 오페라에 대한 이미지가 가장 크게 바뀌었는데 실제 오페라는 내가 생각했던 ‘마술피리’ 애니메이션에서처럼 그냥 서서 노래만 뽐내는 공연이 아니었다. 물론 오페라는 뮤지컬과 달리 공연자를 ‘배우’라 하지 않고 ‘가수’라 부른다. 그만큼 노래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연기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이전 생각과 달리 오페라 가수들의 익살스럽고 세심한 연기가 유머를 조성하며 너무 무겁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세세한 사실 묘사는 공연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아닌 그 이야기의 시대 속에 함께 있다는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또한 성악으로 대사를 이어가는 것은 말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는데, 오히려 감정과 상황 속 현실이 더 세세하게 느껴졌고, 인물과 이야기에 대해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음향 장비의 도움 없이도 전달되는 성량과 악기 반주의 웅장함은 인공적 느낌을 배제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며 위압감마저 들게 하지만 그 안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나비부인’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인 허밍코러스 부분에선 잠잠한 분위기와 함께 내 마음 또한 가라앉게 되었는데, 문득 ‘멀티플리시티’의 엔딩 곡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약간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허밍코러스와 함께 느껴지는 나비부인의 애처로움이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함께 느껴지는 바흐를 향한 바흐의 음악들의 애처로움과 겹쳐서 다가왔다. 
극 중에서 핑커튼은 나비부인을 그 이름과 같이 가냘프게 아름답다고 묘사하며 나비가 붙잡혀 박제가 되는 것처럼 나비부인 또한 핑커튼만의 박제가 되어 영원한 사랑 가운데 갇힌 것이라 노래한다. 그러나 난 오히려 나비부인의 이름이, 그리고 이름을 너무나 닮은 그녀의 인생이 안타까웠다. 전적인 그녀의 사랑은 나비의 나약함을 나타냈고, 핑커튼만의 박제가 되어 사랑에 갇힌 그녀의 모습은 살아있는 아름다움이 아닌 죽어 굳어버린, 날개가 꺾인 나비의 모습일 뿐이었다. 그녀의 애처로운 노랫소리가 심장에 와 닿으며 안타까움을 고조시켰고 그녀의 죽음으로 막이 내림과 동시에 마음도 순식간에 내려앉게 되었다.
그녀의 죽음은 슬펐다.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에 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녀는 죽음을 통해 박제의 굳음을 깨고 다시 자유로운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고 믿고 싶다. 
이번 공연에서는 안타까움으로 축적된 감정의 억제가 커튼콜에서의 박수와 함께 강하게 터져 나오면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관객과 공연자의 감정이 무언의 박수 속에서 소통하는 느낌이었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오히려 감정 공유와 소통이 그 짧은 순간에 극한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 큰 쾌감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Written by 장_키호테. 2014.]


2014.06.2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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