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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공연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 본 발레는 국민대에서 제작한 ‘국민발레 춘향’이었는데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대 장치와 무용수들의 의상에 매료되어 넋을 놓고 봤었다. 발레에 대한 기존까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뜨리게 된 계기가 된 공연이었는데, 그동안의 발레와 달리 화려한 한복을 연상시키는 의상, 클래식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사물놀이 공연은 정말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발레가 결코 지루하거나 재미없지 않다는 느낌을 새긴 시간이었다.
이번 ‘멀티플리시티’는 ‘국민발레 춘향’과는 사뭇 달랐지만 기존 발레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다른 방향으로 전달해주었다. 흔히 발레하면 연상되는 백조 모양의 의상이 아닌 쫄티와 비슷한 느낌의 의상,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비중도 없고 드러나지도 않는 무대 장치와 공허한 무대. 보는 내내 가장 독특하다고 느꼈던 것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이었다. 토슈즈를 신고 발을 세우고, 발목을 바깥쪽으로 돌려서 워킹을 하는 기존 발레의 움직임과 다르게 굉장히 곡선적이고 자유로운 느낌의 움직임이 많았다. 발레라는 것을 미리 알고 보지 않았다면 나 같은 춤 공연 초보자들은 현대무용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움직임들이었다. 그런 곡선적이면서 자유로운 느낌의 움직임들은 과거 어린 시절을 연상시켰는데, 마치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광고 음악이 흐르면 아무 주제 없이 느낌에 따라 순수하게 몸을 움직이며 춤추곤 했던, 감정에 충실한 순수한 느낌이었다. 
‘국민발레 춘향’은 춘향전의 스토리대로 공연이 전개가 되지만 ‘멀티플리시티’는 음악의 흐름에 따라 공연이 전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느새 바흐의 서사적 삶으로 공연은 흘러가고 있었다. 바흐의 음악이 흘러나오며 그 음악을 타고 무용수들은 몸을 움직였다.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직접 악기가 되기도 하고, 악보가 되기도 하고,바흐의 음악 그 자체가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단지 음악을 듣는 차원을 넘어 시각적으로 보면서 관객 또한 음악 안으로 스며드는데, 이를 통해 바흐의 삶을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공연을 보았다. 바흐를 상징하는 무용수는 그 안에서 결코 지휘자의 입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음악 자체와 어우러지며 음악과 뛰놀기도 하고 감정도 나누며 자신의 음악 안에서 삶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흐의 음악이 멈추고 바흐가 쓰러졌다. 공연 시작 전 들었던 해설에 의하면 음악을 인위적으로 멈춘 게 아니라 바흐의 죽음으로 인해 미완성된 곡이라고 했다. 그 순간 내 모든 정신은 쓰러진 바흐에 집중하였다. 그렇게 엄숙함이 몇 초간 흐르다가 처음 공연 시작할 때 나왔던 음악이 다시 흘렀다. 그리고 바흐의 전 생애동안 함께 했던 바흐의 음악들(무용수)이 바흐가 걸었던 길(뒤 무대장치)을 다시 걸어가며 그를 위해 춤을 췄다. 마치 바흐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음악은 여전히 주인을 기리고 찬양하며 살아있는 것 같았다. 보는 동안 약간 졸기도 했지만 이 마지막 장면에서 코끝이 따갑고 눈물이 났다.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여전히 오늘날에도 춤을 추는 바흐의 음악들, 음악들의 춤을 보면서 바흐의 삶을 함께 통과하는 나의 모습은 함께 소통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바흐의 음악들이 그를 위해 오선지 위에서, 악기 위에서, 무대 위에서 동일하게 춤을 추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바흐와 음악과의 사랑의 교감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쵸 두아토는 이 공연을 만들면서 자신의 공연이 바흐의 음악에 흠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는데, 실제 바흐가 이 공연을 보았다면 무슨 느낌을 받았을까. 그 또한 나처럼 눈물짓지 않았을까? 혹은 그의 사랑하는 연인 혹은 자녀인 음악과 함께 그 또한 춤을 추지 않았을까?
바흐의 음악에 대해 미리 더 알고 있었더라면 더 깊게 빠지며 보았을 텐데 그 점이 가장 아쉽다.
[Written by 장_키호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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