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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의 모습부터가 굉장히 새롭고 실험적이었다. 엄숙하고 조명이 꺼진, 객석과 무대와의 거리는 멀찍이 떨어진 고요한 공연장을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앞뒤가 뻥 뚫린 공간에 좌석 또한 방석이 마구잡이로 놓여있는, 예상치도 못한 곳이었다. 처음엔 내가 콘서트에 온 게 맞나 싶었다. 뒤늦게 피아노와 가야금, 드럼 등의 악기를 보고 그제야 공연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굉장히 조촐한 느낌이었지만 그런 조촐함이 오히려 하우스 파티나 가든파티를 연상하게 해서 훨씬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무대과 객석의 구분을 깬 공연장은 연주자와 관객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음악을 타고 함께 호흡하는 느낌을 받게 했다. 연주와 청취가 아닌 함께 숨을 쉬는 시간이라 여겨졌다. 음악의 장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음악 속에 숨겨진 작곡가의 사상과 삶을 찾아내느라 애써 전문적인 지식을 끄집어낼 필요가 없었다. 작곡가는 복잡한 사상과 이론이 아닌 감정과 느낌 자체를 틀에 박히지 않은 악기들을 조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연주하게 했고, 관객은 그저 들으며 떠오른 느낌과 얼굴에 비춰진 표정으로 음악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피아노의 줄을 뜯는 소리를 들으며 듣기 거북한 표정을 지으면 그 자체가 그 음악을 이해하는 방식이 되었다. 말 그대로 공연장을 흐르는 음악이라는 공기를 호흡하는 과정이었다.
가장 인상깊은 곡은 [바위 위에 삶, 돌 위에 음악]과 [In between], [거기에 서있는...]이었다.
[바위 위에 삶, 돌 위에 음악]은 김기영 작곡가께서 마치 에릭사티의 곡을 바위 삼아 피아노라는 정과 망치로 거칠게 다듬어 가는 느낌이었다. 혹은 공허한 무(無)의 상태에서 피아노의 거친 연주를 통해 깎고 다듬어 가며 에릭사티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을 창조해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보니 에릭사티의 음악과 김기영 작곡가의 곡은 부드러움과 거침, 아름다움과 딱딱함의 극적 대비를 보여주는 듯 했다. 게다가 김기영 작곡가님의 혼신을 다한, 몸까지 떨어가며 한 연주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석공의 장인정신을 음악 외적으로까지 전달하는 느낌이었다.
[In between]은 각각의 구분된 음악의 분위기가 한 인간의 다른 인간을 향한 만남과 알아감, 갈등 등의 인간관계 서사를 귀로 듣는 느낌이었다. 특히 이 곡에서의 타악기의 감정 표현은 단연 돋보였는데, 각 감정들마다 느끼는 사람의 심장소리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서있는...]은 [In between]보다 한층 더 넓은 시각에서 역사의 대서사를 듣는 느낌이었다. 언제나 동일한 자리에 서서 계절과 시간, 인간과 사건의 변화를 묵묵히 겪어온 안토니 곰리의 작품 속 인간상은 관점을 바꿔보면 서사적 흐름의 피경험자가 아닌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적극적으로 바라보며 함께하는 적극적 경험자가 된다. 음악을 통해 관객은 동상의 감정과 시각을 공유하며 세계 흐름의 서사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는 듯했다. 
사실 지금까지의 공연 중에서 가장 난해한 공연이었다. 형식이 없는 것 같은 멜로디의 흐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다양한 악기들의 조화, 일반적으로 연주하는 방식을 벗어난 연주, 바로 다음에 어떤 멜로디와 박자가 나오게 될지 모르는 긴장감은 듣는 내내 나를 위축시키곤 했다. 한편으론 눈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진 나머지 귀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색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살아가며 음악 자체에만 집중하며 눈을 감고 들어본 적이 얼마나 될까. 보통 음악을 듣는다고 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하고, 길거리를 걷게 된다. 그러는 동안 청각은 다른 무언가를 위한 보조수단에 불과하게 된다. 그동안 봐왔던 공연들도 마찬가지로 음악은 배경과 조력의 위치일 뿐 순수하게 음악만이 주인공인 공연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공연이 더욱 특별했다. 그동안 많은 부분 의지했던 눈을 닫고 항상 부수적이기만 했던 귀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내 느낌을 정리하는 게 신선했던 시간이었다.
[Written by 장_키호테. 2014.]

2014.06.2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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