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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생각/생각정리

Jang_quixote 2016. 9. 11. 08:33
인생의 격변기를 또 다시 맞이하고 있는 요즘이다.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그 순간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과거의 아픔이나 노고가 생각나 위안을 삼았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지금 다가오는 힘듦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고통스럽고, 그 어떤 밑바닥보다 깊고 어두운 느낌이었다. 과거로부터 전혀 배우지 않았기 때문일까, 혹은 지나온 것들을 제대로 내 안에서 정리하고 소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지난 시간 속의 문제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일까.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요즘의 삶이 딱히 격변기라고 표현할만큼 대단하고 거창한 어떤 일이 있는 건 아니다. 꽤 오래 유지될 것 같았던 창업회사의 공동대표 자리를 1년도 채 유지하지 못하고 생각보다 빨리 내려놓게 되었고, 이곳저곳 채용 공고를 보면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는 중이다. 누구나 다 하는 특별할 것 없는 이 과정이 28살인 내게 뒤늦게 생소한 것은, 지난 2년 동안 굿붐과 문과인간들을 거치면서 남들이 다 밟는 그런 흔한 과정과 걱정을 겪지 않은 채 사회생활에 정착할 거란 기대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기대와 믿음이 깨진 지금 이제서야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며 뒤늦게 꿈과 가치관, 성장과정 따위의 내 인생 전반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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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꿈이 정말 많았다. 

어머니가 아프셨을 땐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소화기내과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고, 가정 안에서조차 소속되지 못하고 겉돌 당시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되어준 선생님들을 보며 교사를 꿈꾸기도 했었다. 집과 학교라는 좁은 틀에서 나와 더 넓은 세상을 배를 타고 누비고 싶어서 해군사관학교를 꿈꿨던 적도 있었고, 특정한 직업을 떠나 그저 빨리 성공하고 독립해서 혼자만의 공간을 꾸리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꾸곤 했었다. 가장 최근까지, 그리고 가장 오래 품었던 꿈은 법조인이 되는 것이었는데, 약자를 돕고 싶었고, 정의로운 일에 일조하고 싶었고, 억울한 일에 눈물 흘리지 않도록 힘을 갖고 싶었다. 

고시 공부를 그만두고 잠시 꿈을 잃은 적도 있었는데, 군대로 도피한 내 자신보다 그런 나를 꿈이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 여기는 주변의 시선이 더 싫었다. 그때마다 속으로 되내곤 했던 말이 '나는 더 큰 도약을 위해 잠시 멈춰있는 것일 뿐 절대 퇴보하고 있는 게 아니다'였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이런 내가 사실 퇴보한 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내 자신에 대한 의심이다. 정말 많은 이야기와 삶의 고민과 성찰을 안고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마주할 때마다 지난 내 삶이 어땠는지 전혀 기억나질 않는다. 지난 28년을 지나 오며 생성된 내 삶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내 성정과정 중 어떤 부분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할지, 지금 내가 살아가며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여기는 생활 신조가 무엇인지, 혹은 내가 지난날 썼던 돈키호테와 같은 삶, 낭중지추, 견문의 삶이 진짜 내 삶이 맞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저 지금은 회색의 탁한 빛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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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일이 즐거웠다. 글 하나를 써내려가는 과정이 쉽지 않고 때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그렇게 완성된 글을 볼 때마다 큰 희열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느 순간 특정 직업이 아닌 삶의 방향이나 모습이 꿈이 되었고, 그런 내 꿈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었다. 또한 매일 새로운 도전 속에서 작은 설렘과 희열을 느끼며 사는 게 꿈이었다. 거창할 건 없어도 혼자만의 작은 도전과 시도들을 이어가는 삶을 살고 싶었다. 평소와 다른 길로 걸어보기, 남들은 절대 해보지 않을 귀찮을 일을 도전해보기, 취업에 전혀 도움도 되지 않을 언어 배워보기, 점자나 수화를 익혀 장애인들의 마음 이해해보기 등. 마지막으로 그런 소소한 행복을 소소한 방법으로 나눠주고 싶었다. 파지를 잔뜩 싣고 가는 어르신의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드리고, 길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과 쓰잘데기 없는 날씨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 받는 삶을 살고 싶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편견없이 바라보고, 그들에게 소소한 행복을 나눠주고 함께 하며, 매일 불가능할 것 같은 도전을 이어가고, 그 안에서 남들을 발견하지 못할 희열을 느끼고, 그러기 위해 내 자리에서 묵묵히 노력하며, 소소하고 평범함 속에서 새로움을 느끼는 삶.... 이게 내가 꿈꿔왔던 돈키호테와 같은 삶, 낭중지추, 견문의 삶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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