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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늦은 저녁, 다소 분주한 마음으로 제일 장례식장을 찾았다. 갑작스레 접한 소식도 아니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미수습자 가족들의 기자회견 소식과 장례식 일정에 대한 기사를 접했지만, 정신없는 일상 속에 SNS에 공유된 소식들을 맹목적으로 좋아요만 누르고 있었나 보다.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그날이 장례식인 것을 깨달았다.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

세월호 희생자들 앞에 설 때마다 매번 다짐하고 되새기는 말이지만 너무나 자주 잊고 살아간다. 안산에 살며 다른 지역에 사는 지인들보다 세월호를 더 자주 접하고, 매일 하루를 시작하며 왼쪽 팔목에 노란 팔찌를 차고 집 밖을 나서지만, 그동안 나는 무엇을 보고 듣고 행동하며 살아간 것인지 모르겠다. 희생자 가족, 미수습자 가족들에겐 멈춰버린 일상, 너무나 무거운 일상이 되어버린 416은 그렇게 나에겐 다른 것에 의해 쉽게 가려지고 잊히는 가벼운 일상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양승진 선생님, 영인, 현철 군 앞에 선 내 마음은 한없이 무겁고 미안했다.

급한 발걸음으로 들어서서 숨도 채 고르지 못한 채, 마음도, 옷매무새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그들 앞에 섰지만 나를 향해 웃는 세 분의 모습은 마치 이렇게라도 마주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만약 이렇게 마주하지 않고 다른 자리에서 다른 모습으로 마주했다면 우린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저 차가운 바닷속 배 안에 오랜 시간 있을 때도, 세월호가 목포항에 올라와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바람이 높아졌을 때도 여전히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았다. 뒤늦게나마 그들이 가졌을 고민, 삶의 이야기, 꿈을 상상해본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무색하게 나는 그들을 마주한 그제야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국화꽃을 놓고 물러서서 한동안 지긋이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다시 되뇌는 다짐,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짧은 기도와 다짐을 마치고도 발걸음이 채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리고 있을 때 시민 상주 한 분이 다가오셨다. 그리고 두 손을 감싸 쥐며 이렇게 찾아와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 감싸 쥔 손과 고맙다는 말을 통해 따스함이 전해진다. 여전히 우리의 4월의 봄은 옛날의 그때와 많이 달라졌지만 이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맞잡은 손을 통해 다시 따스한 4월의 봄을 맞이할 미래를 기대하고 희망해본다. 물론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사회적 참사 특별법이 적지 않은 진통 끝에 통과되었듯 416 기억공원 건립과 세월호 진상규명, 그 외 앞으로 계속 416을 기억하고 그걸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에 앞으로 얼마나 더 지난한 기다림과 진통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 속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무엇을 하기엔 너무나 능력이 부족한 나 스스로에 대한 비관이 앞선다.

그래도, 오늘도 다시 한번 작은 다짐을 해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이라도 꾸준히 하자. 비록 이따금, 아니 너무나 자주 잊어버리는 416이지만 매일 집을 나서며 왼쪽 팔목에 노란 팔찌를 차는 작은 행동이라도 꾸준히 해보자 다짐한다. 최근엔 몇몇 청년들끼리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동네 여행을 기획해보잔 이야기도 나눴다. 전에 다른 지역에 사는 지인이 화랑유원지에 오게 되어 자연스레 합동분향소로 안내하며 세월호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너무나 생소해 하는 모습을 보며 적잖이 놀라곤 했다. 그 계기로 세월호를 알리기 위한 여행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뜻이 맞는 청년들의 능력과 아이디어를 모아 조금씩 만들어 갈 계획이다.

 

그럼에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 순간 또다시 잊고 살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미안함이 앞선다. 그래도, 오늘도 다시 한번 작은 다짐을 해본다. 가장 작은 것이라도 꾸준히 해보자.

집 밖을 나서는 지금, 오늘도 왼쪽 팔목에 노란 팔찌를 차면서 짧게나마 세월호 희생자, 그리고 양승진 선생님과 영인, 현철 군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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