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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기타로 치며 불렀을 땐 나의 서른 즈음은 20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07년 12월 31일 눈 감고 뜨니 어느새 20대가 되어 있었고, 그 후로도 한해한해가 지날 때마다 그저 눈 감고 뜨면서 새해, 새 나이를 맞이 했다.

서른이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엔 인생을 앞서나간 선배들에게 민망한 마음이 컸다. 그들의 눈에 내 나이는 여전히 젊고, 여리고, 무엇이든 해도 늦지 않거나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이니까, 혹은 앞으로 더 많이 남은 인생에 비하면 특별할 것도 없는 순간이니까. 괜시리 '서른'이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유난떠는 부류들은 동갑 혹은 조금 더 어린 후배들 뿐이었다.

여전히 '그 나이'에 의미부여를 하고 싶진 않지만 그럼에도 이 시기가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인생길을 다시 돌아보고 점검하는 시기인 것만은 인정하게 된다. 그러면서 요즘 부쩍 고민하는 주제가 '친구'인 것 같다.

참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떠나보냈고, 다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교회에서도 만났고(혹은 만나고), 학교에서도 만났고, 사업하면서도 만났고, 마을에서도 만났으며, 또래 친구들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던 10대 친구들, 40대, 50대 친구들도 만나고 있다. 부쩍 넓어진 인간관계에 풍족하고 과분한 행복을 누리지만 동시에 그들 모두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고민하다보면 정작 나를 잃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장 괴롭고 참기 힘든 고통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오해가 몇 단계 입을 거치면서 나도 모르는 '사실'로 굳어지게 되는 경우였다. 공인들이야 기자회견을 통해 (상대들이 믿든 안믿든) 해명할 기회라도 얻는다지만 나에겐 그저 지켜보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좌절감, 종종 그 고통은 가장 가깝다고 느낀 친구에게서 오곤 했다. 그래서 더 괴로운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다시 일어설 희망을 또한 친구에게서 찾곤 한다. 여유로운 웃음으로 내 실수를 덮어주고, 도무지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난감해할 때 기적처럼 해답을 들고 나타나고, 나의 우문에 현답으로 길을 안내하기도 하며, 나의 성공에(개인적으론 성공한 적조차 없다 생각하지만) 작은 질투조차 없이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친구들, 그들 덕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고 앞으로의 내가 만들어져간다.

'살아보니 친구는 중요하지 않아'
그래서 김영하 작가의 생각에 100% 동감하진 않지만 오늘처럼 부쩍 인간관계에 지칠 때면 참 듣고싶은 말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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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어려운 고민이다. 어쩌면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러고 싶진 않다. 양측으로 나뉘어 겨루는 토론 중에 중립입장을 내며 쉽게 답을 내려는 것 같아 별로다. 그래서 조금 마음이 먹먹해도 더 깊이 고민하고 사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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