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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공동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어떠해야할까. 
굉장히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물음이지만 그만큼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는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물음이다. 신앙과 믿음으로 목숨까지 잃을 수 있었던 초대교회에서 공동체는 곧 생사를 공유하는 관계이자 동지였다. 오늘날처럼 공동체의 누군가가 믿음과 신앙을 저버려도 다소 실망할 뿐 큰 상실과 상처로 남지 않는 분위기와 달리 당시는 배반이자 생존의 위협이었을 것이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의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불편함, 성향, 유쾌한 분위기 등을 따질 수 없었을 것이다. 믿음 안에서 무조건 함께 가야만 하는 공동체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그 안에서의 공동체 문화를 오늘날에 그대로 적용하는 건 분명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현대의 대한민국에선 신앙으로 목숨을 잃을 일은 극히 드물다. 일부 특수하고도 비정상적인 상황을 제외하곤 종교적 탄압으로 목숨을 잃을 일은 없으며, 따라서 굳이 신앙 공동체가 모여 생존을 함께 도모하거나 생활을 같이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만큼 공동체에 대한 의존도도 당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체념이 아닌 상황에 적응한 공동체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진 어느 정도 정리된 생각.
그렇다면,
생존을 위해 서로 뭉쳐있을 필요가 없어졌다고 해서, 생활을 공유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해서, 그만큼 공동체에 대한 삶의 의존도가 낮아졌다고 해서 공동체를 가볍게 여길 수 있을까. 개인주의적 삶이 만연해지고, 불편한 사회적 관계로부터 애써 버텨거나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의 유익에 따라 관계를 설정하고 선택하는 게 쿨함을 넘어 당연함이 되어가는 오늘날의 분위기 속에서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오늘날 청년들에게 어떤 포지션일까. 혹은 어떤 포지션이어야 할까. 

만약 공동체 모임이 재미가 없거나 관계적 불편함, 성향의 안맞음 등으로 인해서 자주 빠지게 된다면,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서로를 감내하고 인내하며 가야할까? 그렇다면 공동체는 일종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일까?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라면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그걸 감당한 수고로움은 어디에서 채워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면,
위와 같은 상황에서 개인은 아무 이상이 없고 다만 공동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재밌거나 유쾌하거나 감동이 일거나 위안을 얻는 등 모두에게 유익함이어야 하며, 그게 올바른 공동체인 걸까? 그렇다면 위와 같은 상황에서 공동체를 이탈하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절대 그 누구도 공동체를 강요할 수 없는 걸까? 

혹자는 쉽게 답을 내릴 것이다. 공동체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교회를 이룸이니 어느 정도 사명감에 따라 이뤄가야 하며 나와 성향이 맞지 않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해야 한다고. 이런 답을 누군가 내게 내려준다면 싸이코패스라 부르거나 혹은 머저리라고 할 것 같다. 정답이지만 정답이 아니다. 누구도 쉽게 사명이니 책임이니 하는 말로 사명이란 이름의 '희생'을 강요해선 안된다. 그래서 다시 문제는 처음으로 돌아온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세상의 모임과 다름없이 각자의 유익과 성향에 따라야 하는 걸까, 아니면 사명감과 책임에 따라야 하는 걸까, 혹은 반반 섞어서 적당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되 신앙과 별개의 적당한 우정도 필요한 걸까? 

P.S. 드라마 A.D.를 보면 그렇게 철천지 원수 같은 사이도 예수를 믿고 세례 받으니 바로 형제라 부르며 안고 받아주며 기뻐하던데.... 그렇지 못한 나는 그만큼 예수님을 덜 사랑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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